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 이번 시간에는 천간의 '계수'를 알아보겠습니다.

천간-계수
계수

 

계수(癸水)는 오행 중 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음에 해당하여 음수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조용한 흐름

 

계수는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소하게 내리는 가랑비, 늘 새롭게 정화되는 약수에 비유됩니다. 시냇물은 장애물들을 비껴가면서 굽이굽이 흐릅니다. 이러한 완곡한 유동성은 임수의 거친 흐름과는 좀 다릅니다.

 

계수는 장애물을 만나면 둘러가고 오목한 곳에서는 머무릅니다. 외부의 지형지물에 따라 자신이 가던 길의 방향을 바꿔 가는 것이 계수의 스타일입니다.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피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완곡하다는 말은 그러한 성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계수에겐 외부 조건이 중요합니다. 환경에 따라서 운명의 선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유랑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계수는 졸졸 흐르다가 오목하게 팬 곳에선 잠시 머무릅니다. 그리고 물이 넘치면 또 다시 흘러갑니다. 이렇듯 외부 조건에 따라 고이고 흐르고 스며듭니다. 

 

시냇물
시냇물

 

키워드 둘. 고임

 

특히 계수에게 중요한 운명의 변수는 오목한 지형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목한 곳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던 계수가 고여 있을 수 있는 장소인데요. 고인다는 것은 역량을 한 군데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계수는 자신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습니다. 그 역량이 제법 모이게 되면 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파워풀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양의 기운과 달리 고인 물은 잘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계수는 한 분야에 집중하면 뜻을 이루는 데 매우 유리합니다. 모여든 역량이 집중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서로 섞이듯이 존재 안에 있던 다양한 힘들이 섞여서 변칙적이고 독창적인 성과를 이뤄 냅니다. 그것은 사회적 명성을 가져오기도 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독특한 취미나 재능으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습니다. 계수는 자기 동력이 약한 편이라 한번 고이면 스스로 흐름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분야에서 실력을 쌓고 나서 일정한 성과를 얻긴 했지만 더 이상 창의적인 발전 혹은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고인 물이 썩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또는 오랜 관계에서 더 이상 새로운 대화나 사건이 생기지 않을 때나, 공부가 똑같은 지점에서 맴돌거나 익숙한 것을 재탕해서 써먹을 때도 그러합니다. 계수는 유독 그런 상황에서 잘 지내지 못합니다.

 

우선 몸에서 격한 지루함을 느낍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분노가 자주 일거나 맥락 없는 슬픔에 빠지고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이런 정신적인 증상이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몸에서는 고여 있는 상황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알아채거나 개선의 시점을 선택하는 데 꽤 오래 걸립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면 빠져나갈 사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탈출에 대한 의지가 기회를 만드는 것인데, 계수도 그렇습니다. 계수가 신체적으로 지루함과 답답함을 지속적으로 감지할 때쯤, 무언가 일이 터지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비가 와서 오목한 곳에 고인 물을 넘치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는 이 틈을 타서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몸이 만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기회는 더 큰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더 클 수 있는 시점에서 그만두게 되면 성장의 발목을 잡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신체적인 답답함은 창의적인 생각을 저해합니다.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공간에서 더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기회를 틈타서 오목한 공간을 빠져 나갈 수도 있고, 그 공간에 남아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답답함을 이겨낼 수 있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할 지는 개인의 스타일과 철학, 윤리 등에 달렸습니다.

 

 

키워드 셋. 스며듦

 

계수의 특징 중 하나는 스며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스며든다는 말은 삶의 영역에서 여러 맥락으로 설명됩니다. 우선,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나서기 싫어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나설 때도 매우 조심스럽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침잠하고 있는 물의 특성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관계맺는 것에 적극적이진 않고, 보통은 일대일 관계나 소수와의 관계를 선호합니다. 조직에서도 사람들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두루 친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면, 계수가 잘 섞이지 못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규율이 엄격하거나 기존의 조직원 사이에 유대감이 강한 조직에서 계수는 잘 섞이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밀도가 높은 조직엔 잘 스며들지 못합니다. 계수는 좀 성긴 곳, 규율이 허술하고 관계도 뒤숭숭하며 윤리가 엄격하지 않은 조직이나 집단에서 잘 섞입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고, 심연을 탐구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하며, 분위기에도 잘 젖습니다. 계수는 사람의 감정을 잘 포착합니다. 감정의 맥락을 이해하고 상대의 심연으로 젖어듭니다. 

 

물론 상대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말이 꼭 상대에게 동조하거나 찬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이해력은 상대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충고와 비판의 전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때론 조직을 이끄는 심리술로도 사용되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공부도 심연으로 파고드는 철학, 문학, 종교, 신화, 예술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논리 이면의 세계, 즉 영성과 직관의 영역들을 탐구하고 싶어 합니다.

 

 

키워드 넷. 투명성

 

계수의 또 다른 특징은 투명하고 맑은 물이라는 점입니다. 투명한 물은 깊숙한 곳까지 조망할 수 있는데, 계수의 마음엔 이런 투명함에 대한 지향성이 있습니다. 투명하다는 성질은 전체에 대한 조망, 떳떳함, 윤리적 명분 등으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계수는 늘 스스로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탁한 상태, 미진한 마무리는 계수가 경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졸졸졸 흐르는 물은 조금만 흐름이 멈춰도 곧 썩거나 탁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빠져나갈 틈새를 만들고 언제든 흘러갈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그 유동성이 자신을 썩지 않도록 하는 신체성입니다. 그것은 매사에 절차적 투명함, 의견의 투명함, 업무적 투명함, 회계의 투명함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응용됩니다.

 

계수는 의견에 가려진 숨은 의도를 캐묻습니다.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사람의 마음속도 그렇게 다 관찰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계수는 절차 자체의 공정성이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쉽게 던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투명성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대외적인 측면보다 자기 자신입니다. 스스로가 자기 의견과 일의 절차, 그리고 윤리적으로 투명하다고 느끼면 만족합니다. 때론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스스로 투명함을 인정하기만 하면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오해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키워드 다섯. 유연함

 

계수는 흐름의 강도로는 임수보다 약하지만, 유연함에 있어서는 임수보다 부드럽습니다. 유연하다는 건 융통성, 총명함, 음흉함 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융통성은 사회생활에 매우 유리한 능력입니다. 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융통성은 어느 순간 계수의 투명성과 부딪히기도 합니다. 투명성에 대한 집념이 일어나면 계수의 융통성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꼬장꼬장한 감시자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수의 마음을 잘 읽어내지 못합니다. 감춰져 있다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계수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계수를 약간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무서워서라기보다 은밀하게 숨겨져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어쨌든 투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계수는 일상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융통성이 상대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와 여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욕을 채우는 방편으로 쓰이게 될 때입니다. 그것은 유연함이 음흉함으로 응용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오히려 유연성은 점차 사라집니다. 오랜 사욕은 흉부에서 일어나 등을 경직시키고 몸을 뻣뻣하게 만듭니다. 몸이 경직되면 마음도 부드러움을 잃게 되며 융통성도 잘 생기지 않습니다.

 

융통성을 잘 발휘하면 상대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줍니다. 그 상태를 총명함이라 합니다. 긴장된 상태에서는 머리가 굳어서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힘을 빼야 하듯이, 머리를 쓸 때도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거기서 총명함이 나옵니다. 그래서 융통성과 유연함은 총명함의 근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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