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학 이야기, 이번 시간에는 천간의 '정화'를 알아보겠습니다.
정화(丁火)는 오행 중 화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음에 해당하여 음화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예(禮)와 형식
정화는 예와 배려의 아이콘입니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때부터 밝고 친절하고 따뜻합니다. 정화는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돋보이게 하며 상대가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배려하는데요. 하지만 몸에 배어 있는 이런 따뜻한 예절이 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짓된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몸에서 이런 형식적 법도가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예는 형식적 절차와 법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둡니다. 정화도 법식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습관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은데요. 사람들에게는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기본은 한다는 무의식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식과 절차가 모든 관계에서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간관계라면 문제가 좀 다른데요. 정화에게는 인간관계도 하나의 예법입니다. 그런데 자기 안의 예법에서 벗어나는 경우엔 갈등이 유발됩니다. 자기 법도를 지켜가는 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순간 반목이 시작됩니다.
예법은 진리가 아니라 어떤 조건 안에서 범주화된 것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내면화한 법도와 절차를 마치 누구나 지켜야 하는 진리인 양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윤리를 강요하거나 회유하게 됩니다. 그 노력이 잘 먹히지 않을 때, 큰 스트레스가 따르죠. 정화의 인간관계는 이 지점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키워드 둘. 희소성
태양이 광활한 대지를 비추는 반면, 촛불과 조명은 한정된 공간만을 비춥니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대낮의 태양에 대해 감사하기보다 한밤중의 등불이나 촛불을 더 중요하게 느낍니다.
필요한 곳에 등장하여 스스로 빛이 되는 것, 그것이 정화의 본성인데요. 정화가 병화보다 더 밝아 보이고 쾌활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빛이 인식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화는 여러 모습으로 빛이 되는데요. 마을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작은 규모의 세미나에서 빛나는 유머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장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론과 출판을 통해 숨겨져 있던 사실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단, 그 규모는 크지 않고 소소하게 일어납니다.
키워드 셋. 미시적 권력
모두가 기댈 수밖에 없는 그 희소한 가치는 때때로 권력의 욕망을 부추기는데요. 형식이 예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한정된 희소가치는 스스로 몸값을 높입니다. 정화의 등불 같은 가치 역시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촘촘하게 권력화됩니다.
정화의 권력은 정교하고 미시적으로 행사되는데, 미시 권력은 거대한 힘에 의존되어 있습니다. 작은 공간의 권력자는 스스로 절대자임을 천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더 큰 힘에 기대어 대리자 노릇을 합니다.
미시 권력을 이용하는 자는 큰 힘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큰 힘과 나머지 구성원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킵니다. 그런 위계적 구도 안에서 큰 힘에게는 의존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는 그 힘을 대리하여 안전하게 권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위대한 힘에는 위험한 유혹이 따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에게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 만일 위계적이고 의존적인 굴레에 갇혀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당하게 홀로 자기의 길을 밝히며 한정된 공간을 떠나는 것이 정화의 운명적 과제입니다.
키워드 넷. 뜨거운 내면
정화는 음화입니다. 불은 기본적으로 양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음적인 화라는 것은 그런 속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잠시 숨겨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정화는 표면적으로는 온화하지만 내면엔 뜨거운 화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욕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미술 등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욕망들이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심연에서 폭발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 불꽃 같은 경험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삶의 근원적 추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화병의 불씨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학 이야기, 이번 시간에는 천간의 '정화'를 알아보겠습니다.
정화(丁火)는 오행 중 화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음에 해당하여 음화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예(禮)와 형식
정화는 예와 배려의 아이콘입니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때부터 밝고 친절하고 따뜻합니다. 정화는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돋보이게 하며 상대가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배려하는데요. 하지만 몸에 배어 있는 이런 따뜻한 예절이 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짓된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몸에서 이런 형식적 법도가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예는 형식적 절차와 법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둡니다. 정화도 법식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습관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은데요. 사람들에게는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기본은 한다는 무의식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식과 절차가 모든 관계에서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간관계라면 문제가 좀 다른데요. 정화에게는 인간관계도 하나의 예법입니다. 그런데 자기 안의 예법에서 벗어나는 경우엔 갈등이 유발됩니다. 자기 법도를 지켜가는 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순간 반목이 시작됩니다.
예법은 진리가 아니라 어떤 조건 안에서 범주화된 것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내면화한 법도와 절차를 마치 누구나 지켜야 하는 진리인 양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윤리를 강요하거나 회유하게 됩니다. 그 노력이 잘 먹히지 않을 때, 큰 스트레스가 따르죠. 정화의 인간관계는 이 지점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키워드 둘. 희소성
태양이 광활한 대지를 비추는 반면, 촛불과 조명은 한정된 공간만을 비춥니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대낮의 태양에 대해 감사하기보다 한밤중의 등불이나 촛불을 더 중요하게 느낍니다.
필요한 곳에 등장하여 스스로 빛이 되는 것, 그것이 정화의 본성인데요. 정화가 병화보다 더 밝아 보이고 쾌활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빛이 인식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화는 여러 모습으로 빛이 되는데요. 마을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작은 규모의 세미나에서 빛나는 유머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장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론과 출판을 통해 숨겨져 있던 사실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단, 그 규모는 크지 않고 소소하게 일어납니다.
키워드 셋. 미시적 권력
모두가 기댈 수밖에 없는 그 희소한 가치는 때때로 권력의 욕망을 부추기는데요. 형식이 예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한정된 희소가치는 스스로 몸값을 높입니다. 정화의 등불 같은 가치 역시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촘촘하게 권력화됩니다.
정화의 권력은 정교하고 미시적으로 행사되는데, 미시 권력은 거대한 힘에 의존되어 있습니다. 작은 공간의 권력자는 스스로 절대자임을 천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더 큰 힘에 기대어 대리자 노릇을 합니다.
미시 권력을 이용하는 자는 큰 힘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큰 힘과 나머지 구성원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킵니다. 그런 위계적 구도 안에서 큰 힘에게는 의존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는 그 힘을 대리하여 안전하게 권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위대한 힘에는 위험한 유혹이 따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에게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 만일 위계적이고 의존적인 굴레에 갇혀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당하게 홀로 자기의 길을 밝히며 한정된 공간을 떠나는 것이 정화의 운명적 과제입니다.
키워드 넷. 뜨거운 내면
정화는 음화입니다. 불은 기본적으로 양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음적인 화라는 것은 그런 속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잠시 숨겨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정화는 표면적으로는 온화하지만 내면엔 뜨거운 화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욕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미술 등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욕망들이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심연에서 폭발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 불꽃 같은 경험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삶의 근원적 추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화병의 불씨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