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 이번 시간에는 지지의 '술토'를 알아보겠습니다.

술토(戌土)는 오행 중 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양에 해당하여 양토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개

 

> 배회

 

개는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냥을 하고 썰매를 끌고 집을 지킵니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가족의 일원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류학적으로 인간이 야생의 개를 억지로 잡아다 가축화시킨 것은 아닙니다. 개는 그저 자기 의지에 따라 인간 사회에 정착한 존재인 것입니다. 개의 선조인 야생 늑대가 멸종 위기에 처한 거에 비하면 인간의 거주지 내에 자리를 마련한 개는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어떤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이루어 냈습니다.

 

술토의 성향은 개의 이런 습성과 비슷합니다. 늑대의 무리에서 인간의 문명 안으로 들어온 개처럼, 술토 역시 늘 문명의 주위를 어슬렁거립니다. 여기서 문명이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최신 산업과 정치적 비판과 학문의 향연이 일어나는 시공간입니다. 

 

거기서 술토는 그 주변을 배회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야생의 본성을 꿈꾸지만 여행지의 수려한 경관을 즐길 뿐, 깊고 적막한 자연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대를 지휘하는 문명의 산정에 오르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야생의 심연과 문명의 산정 사이에서 그저 사람들이 오가는 저잣거리 이곳저곳에 영역을 표시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이동의 범위도 크지 않습니다. 집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몰려다니며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마을의 개들처럼, 가만히 있으면 갑갑해서 못 견디지만 그렇다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배회의 루트가 익숙해지면 한번씩 거처를 옮기고 싶어 합니다. 

 

술토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익숙한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고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동하고 정착해서는 또 그 동네를 배회하며 친한 사람들과 만나며 지냅니다. 이러한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는 것이 술토의 특징입니다.

 

> 애정과 의리

 

친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애정을 주고, 또 의리를 지킵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애정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업무에 있어서도 성실하게 일해서 조직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개는 무엇인가를 잘 훼손시킵니다. 그런 개의 특성은 술토의 산업적 역량, 즉 분해, 조립, 수리, 가공 등으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키워드 둘. 마감

 

술월의 토는 수확이 끝난 황량한 벌판입니다. 건질 것이 별로 없어서 실속이 없고, 결실을 맺기 어렵습니다. 이제 내년 농사를 기약하며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술월은 한로와 상강을 포함합니다. 한로엔 국화차를 담그는 풍속이 있는데요. 그런데 국화차는 좀 차가운 편입니다. 한로란 찬 이슬이 내리는 시기인데 이런 때에 차가운 차를 마시는 것이 어쩐지 잘 안 맞는 느낌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름의 화기를 마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술토는 화기를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지지의 화기는 인목에서 시작되어 오화에서 왕성해지며 술토에서 갈무리됩니다. 국화차를 술월에 마시는 것은 여름에 남겨진 찌꺼기, 구체적으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활동한 일들을 정리하고 맑은 마음으로 겨울을 보내겠다는 다짐입니다. 요컨대 술월은 지난 1년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술시(戌時)도 비슷합니다.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 사이가 술시입니다. 이때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입니다. 낮에 있었던 업무와 관계 안에서 쌓인 감정들을 털어 버리고 밤에 편안한 잠을 자기 위한 마감 시간입니다. 따라서 술토는 결실보다는 결실 이후의 상황에 대비한 정리, 전환, 재배치의 기운을 의미합니다.

 

화기를 갈무리한다는 것은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술시는 해가 지고 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 시간은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개와 늑대의 시간',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것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때이죠. 그래서 그 무렵 낯선 곳에서는 길을 잃기 쉽습니다.

 

월지 술토의 경우엔 가끔 생각의 길을 잃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산 것 같은데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거나,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모를 때가 종종 찾아옵니다. 그런 모호한 상태는 미묘한 설렘을 일으켜 삶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불안을 야기하며 정신적인 병증을 얻기도 합니다. 

 

 

키워드 셋. 산지박(山地剝)

 

'박(剝)'은 '벗기다, 깎다, 상처를 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잘 훼손시키는 술토이 특징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괘상을 보면 음효가 5개 있고, 맨 위에 양효가 하나 있습니다. 

 

사주에 따라 훼손되는 대상(군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자존심이나 자립 정신이 약해질 수도 있고(술토 비겁), 자기를 지켜 주는 동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술토 비겁),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잘 클 수 있는 자식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아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술토 식상)도 있고, 안 해도 되는 말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며(술토 식상), 일의 보람을 그르치고(술토 재성), 아내의 뜻을 누르는(술토 재성) 방식으로 쓰기도 합니다. 또한 남편의 기를 꺾고(술토 관성), 조직의 뜨거운 감자 노릇을 하며(술토 관성), 공부의 맥을 놓치고(술토 인성),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만들기도 합니다(술토 인성). 이렇듯 술토는 그에게 군자가 될 수 있는 존재나 기운에 대해 상처의 흔적을 남깁니다.

 

이런 행위는 대체로 자기 복을 차 버리는 행동이 되는데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현 상태의 군자(복)를 훼손시킴으로써 그 군자와의 의존적 관계에서 해방되는 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예컨대 젖먹이 아이에겐 엄마의 돌봄이 생존적 절실함이 되지만 젖을 떼거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위한 어떤 '단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주체가 의존적인 일대일 관계를 청산하고 자립의 지대로 나아가는 회심의 카드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배회하거나 서로에게 상흔을 남기기도 하지만 의존적 관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선 하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 카드가 동일한 의존적 고리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는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복을 차 버린 대가로 해방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존적 억압 안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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