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 이번 시간에는 지지의 '축토'를 알아보겠습니다.
축토(丑土)는 오행 중 토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음에 해당하여 음토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소
> 유용함
소는 우직하고 성실합니다. 오랫동안 소는 우리 곁에서 식량 생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소는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요. 살아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주고, 죽어서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전부 귀한 음식이 됩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유용한 동물입니다.
축토는 이렇게 소처럼 성실하고 우직하며 묵묵하게 일하는 스타일입니다. 소띠(연지의 축토)들은 평생 일복이 넘쳐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야말로 소는 노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축토는 매우 유용한 직원입니다. 좀 느리지만 자기 할 일을 끈기 있게 해결하는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자수가 여러 가지 일을 산발적으로 다루는 반면, 축토는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지속합니다.
> 느림
그 대신 좀 느린 편입니다. 느림은 소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토의 성향이기도 합니다. 땅에 무엇을 심으면 자라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래도 약속을 어기거나 늦는 일만 없다면 느린 것 자체는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 예컨대 처음엔 몰랐는데 집에 가니 기분이 나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감정의 시간차라고 할까요. 토의 습성이 대개 그렇습니다. 그럴 때 축토는 몸속 깊은 곳에 그 기억을 묻어 두는 편입니다. 그게 쌓이면 폭발하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그때그때 가볍게 감정을 분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묵은 때는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 고집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는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축토의 고집이 그렇습니다. 축토는 몸에서 스스로 감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남의 말도 잘 듣지 않고, 그럴듯한 이론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몸소 겪은 경험치 안에서만 이해하고 실천합니다. 이런 점은 정직함의 미덕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대의명분
축토에게는 대의명분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고 스스로 인정한 명분입니다. 사회적 정의나 조직의 이익 등 사익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평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축토는 이 가치가 삶의 영역 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며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크고 작은 활동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토에게 그 활동들은 자기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감당해야 할 의무 같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그 의무를 채워 가는 과정에서 대개 자부심이 일어나지만 때론 손해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강해져도 쉽게 그 일을 놓지 못하며 그럴 때는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신이 세운 명분 안에 갇혀 버린 셈이죠.
키워드 둘. 습한 땅
> 종자 숙성
습토는 습하고 추운 땅입니다. 특히 월지 축토는 더 춥습니다. 축월은 절기로 소한, 대한입니다. 아직 땅이 얼어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종자를 키우긴 하되 새싹을 용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서 숙성시키고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점도 느리고 꼼꼼한 성격과 통하는 이미지입니다.
오래 묻어 둘 수 있다는 것은 끈기와 기억력이 좋다는 뜻인데요. 여기에 무엇을 묻을 것인지에 따라 수확물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한다면 잘 숙성된 깊이 있는 이론이 나올 것이고, 감정이나 기억을 오래 묻어 놓는다면 담음이나 어혈이 생길 것입니다.
> 기울(氣鬱)
담음과 어혈은 몸 안에 뭉쳐진 물의 여분, 흐르지 않고 고인 피를 말합니다. 월지 축토는 특히 이렇게 몸 안에서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차갑고 단단한 겨울 땅의 이미지와 닮았습니다. 뭉치는 원인은 대개 감정이 오래되어 기가 응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울이라고 합니다. 몸 안에 오랫동안 쌓아놓은 억울함, 우울함 등이 기울이 됩니다.
축토는 쌓아 두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미 쌓이고 뭉친 것을 풀기 위해서는 운동이 가장 좋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단선적 인과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만든 건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과 예기치 못한 변수, 그리고 나의 해석체계입니다. 특정한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키워드 셋. 지택림(地澤臨)
자수 일양이 씨앗이 막 발아를 시작하는 지점이라면, 축토 이양(二陽)은 발아된 새싹이 더 자라나 땅 위를 뚫고 올라오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 건드리기만 하면 새싹이 곧 땅을 뚫고 나올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나옵니다.
축토는 매번 그렇게 뭔가 한 끝이 모자랍니다. 땅 위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 땅 위로 나오는 것에는 나름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성실한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과감한 돌파가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할지 모릅니다.
이양의 괘상은 '지택림'입니다. 지뢰복괘의 일양은 미약한 군자의 도를 지니므로 동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축토의 양기는 그 협력을 위한 다가감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직 땅을 뚫고 올라오진 못했지만 그 협력은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공덕입니다. 축토는 그런 협력의 공덕을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축토의 영향력으로 그 일은 최대의 업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이 처음 시작한 자수 일양에 집중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에너지를 쏟은 만큼 대가가 적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공덕의 대가는 다른 곳에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손해가 아닙니다. 작은 손해에 마음이 상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 이번 시간에는 지지의 '축토'를 알아보겠습니다.
축토(丑土)는 오행 중 토에 배속되고, 음양 중에는 음에 해당하여 음토가 됩니다.
키워드 하나. 소
> 유용함
소는 우직하고 성실합니다. 오랫동안 소는 우리 곁에서 식량 생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소는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요. 살아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주고, 죽어서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전부 귀한 음식이 됩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유용한 동물입니다.
축토는 이렇게 소처럼 성실하고 우직하며 묵묵하게 일하는 스타일입니다. 소띠(연지의 축토)들은 평생 일복이 넘쳐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야말로 소는 노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축토는 매우 유용한 직원입니다. 좀 느리지만 자기 할 일을 끈기 있게 해결하는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자수가 여러 가지 일을 산발적으로 다루는 반면, 축토는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지속합니다.
> 느림
그 대신 좀 느린 편입니다. 느림은 소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토의 성향이기도 합니다. 땅에 무엇을 심으면 자라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래도 약속을 어기거나 늦는 일만 없다면 느린 것 자체는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 예컨대 처음엔 몰랐는데 집에 가니 기분이 나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감정의 시간차라고 할까요. 토의 습성이 대개 그렇습니다. 그럴 때 축토는 몸속 깊은 곳에 그 기억을 묻어 두는 편입니다. 그게 쌓이면 폭발하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그때그때 가볍게 감정을 분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묵은 때는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 고집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는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축토의 고집이 그렇습니다. 축토는 몸에서 스스로 감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남의 말도 잘 듣지 않고, 그럴듯한 이론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몸소 겪은 경험치 안에서만 이해하고 실천합니다. 이런 점은 정직함의 미덕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대의명분
축토에게는 대의명분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고 스스로 인정한 명분입니다. 사회적 정의나 조직의 이익 등 사익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평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축토는 이 가치가 삶의 영역 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며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크고 작은 활동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토에게 그 활동들은 자기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감당해야 할 의무 같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그 의무를 채워 가는 과정에서 대개 자부심이 일어나지만 때론 손해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강해져도 쉽게 그 일을 놓지 못하며 그럴 때는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신이 세운 명분 안에 갇혀 버린 셈이죠.
키워드 둘. 습한 땅
> 종자 숙성
습토는 습하고 추운 땅입니다. 특히 월지 축토는 더 춥습니다. 축월은 절기로 소한, 대한입니다. 아직 땅이 얼어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종자를 키우긴 하되 새싹을 용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서 숙성시키고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점도 느리고 꼼꼼한 성격과 통하는 이미지입니다.
오래 묻어 둘 수 있다는 것은 끈기와 기억력이 좋다는 뜻인데요. 여기에 무엇을 묻을 것인지에 따라 수확물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한다면 잘 숙성된 깊이 있는 이론이 나올 것이고, 감정이나 기억을 오래 묻어 놓는다면 담음이나 어혈이 생길 것입니다.
> 기울(氣鬱)
담음과 어혈은 몸 안에 뭉쳐진 물의 여분, 흐르지 않고 고인 피를 말합니다. 월지 축토는 특히 이렇게 몸 안에서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차갑고 단단한 겨울 땅의 이미지와 닮았습니다. 뭉치는 원인은 대개 감정이 오래되어 기가 응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울이라고 합니다. 몸 안에 오랫동안 쌓아놓은 억울함, 우울함 등이 기울이 됩니다.
축토는 쌓아 두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미 쌓이고 뭉친 것을 풀기 위해서는 운동이 가장 좋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단선적 인과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만든 건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과 예기치 못한 변수, 그리고 나의 해석체계입니다. 특정한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키워드 셋. 지택림(地澤臨)
자수 일양이 씨앗이 막 발아를 시작하는 지점이라면, 축토 이양(二陽)은 발아된 새싹이 더 자라나 땅 위를 뚫고 올라오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 건드리기만 하면 새싹이 곧 땅을 뚫고 나올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나옵니다.
축토는 매번 그렇게 뭔가 한 끝이 모자랍니다. 땅 위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 땅 위로 나오는 것에는 나름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성실한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과감한 돌파가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할지 모릅니다.
이양의 괘상은 '지택림'입니다. 지뢰복괘의 일양은 미약한 군자의 도를 지니므로 동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축토의 양기는 그 협력을 위한 다가감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직 땅을 뚫고 올라오진 못했지만 그 협력은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공덕입니다. 축토는 그런 협력의 공덕을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축토의 영향력으로 그 일은 최대의 업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이 처음 시작한 자수 일양에 집중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에너지를 쏟은 만큼 대가가 적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공덕의 대가는 다른 곳에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손해가 아닙니다. 작은 손해에 마음이 상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합니다